잃은 양을 찾아서

작성자
gfgc
작성일
2016-07-08 15:49
조회
514
잃은 양을 찾아서

누가복음 15:3~7

2016.06.26.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1991년 대구에 거주하는 5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명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우리사회에 큰 아품을 주었던 사건입니다.

어렸을 때, 어린이들이 깊은 산중에 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저도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강원도 깊은 산중에 올라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산에 올라갔다가 짐승을 잡기 위해 파놓은 함정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져본 경험도 있습니다.

강원도에 깊은 산중을 가다보면 가끔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있습니다. 즉, 나무가 베어 졌다든가 산속에 길이 유난히 잘 나 있는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곳 주변에는 올무나 함정이 꼭 있습니다.

짐승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짐승이 다니는 길목에 깊이 2메다 이상을 깊이로 땅을 파고 그 위에 약한 나무를 덮고 또 그 위에 낚옆을 덮어 함정을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산에 다니다가 함정을 발견하면 그곳에 무엇이 빠져있나 하고 땅에 엎드려 함정아래를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함정에 빠져있는 토끼, 오소리, 고솜도치, 다람쥐 등을 보았습니다. 제가 본 함정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함정아래 뱀이 빠져 있었던 것도 본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우리 동네에서 어린이들이 실종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틀 후에 산속에 함정에 빠진 것을 어떤 사람들이 발견하고 데리고 왔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이 빠져 있는 함정 안을 보았을 때는 그 함정에는 뱀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틀 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잠은 제대로 잤을까요? 그들의 정신은 온전했을까요?

어쩌면 에덴동산을 떠나 마귀들이 있는 세상 죄에 빠져 있는 인생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아이들은 뱀과 함께 밤을 보내지 않고 미리 나오는 길은 없었습니까? 만일 이 아이들이 어떤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 가고, 주변에 맹수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 길을 잃은 양 한 마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금 양을 돌볼 사람은 주인 혼자 밖에 없고, 지금 주인에게는 99마리의 양이 함께 있습니다. 양 한 마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길을 잃었던 양이 스스로 찾아올까요?

제가 보기에 지금 현재 상태로 길을 잃은 양이 스스로 집을 찾아 들어오기에는 불가능한 생태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양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길 잃은 양이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길 잃은 양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주인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이 어떻게 하다가 길을 잃게 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양이 자기 혼자 무엇을 더 먹겠다고 대열에서 이탈했는지, 그 양이 몸이 안 좋아서 잘 못 따라 오다가 길을 잃었는지 아니면 주인이 무리하게 이동하다가 잘 보살피지 못한 사이에 수렁에 빠졌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길 잃은 양의 생명은 주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 양을 가장 신속하게 구출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양을 잘 알고 있는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주인이 어떤 주인이냐에 따라 양은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때 주인이 양을 기르는 것을 경제적 논리로 생각한다면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킨다며, 한 마리 양을 그냥 버려두고 가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푸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가 있는데 4~6절에 있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편이 상 목자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를 주목합니다. 그가 양을 찾았습니다. 찾은 후에는 찬지를 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우리는 이 목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 본문에 등장하는 목자를 잘 모른다면 신앙생활 천제에서 구원의 감격도 신앙생활에 승리도 바르게 안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큰 사건은 양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마리 양이 부족하다고 것을 인지한 것이 바로 목자 였습니다.

양 한 마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한 목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곧바로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99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서 나섰습니다. 이는 대단한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목자의 판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목자가 99마리 양을 그냥 들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혹 양을 돌보는 또 다른 목자가 있어서 그에게 99마리 양을 맡기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섰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99마리 양을 양들끼리 있게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선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99마리의 안전 때문입니다. 그렇게 99마리를 들에 두고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떤 분들은 이에 대해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99마리는 무리지어 있기 때문에 덜 위험하고 한 마리양은 홀로 있기 때문에 많이 위험하기 때문에 목자는 당연히 더 위험한 쪽부터 돌봐야 된다고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가 그의 양이라고 할 때, 여러 성도들이 서로 잘 교제하고 살면 덜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께서 혼자 위험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 우리를 버려두고 가신다면 이해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 말씀을 단순히 구출, 보호, 전도 쪽으로 초점을 맞추면 은혜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 할 수 있는 핵심이 본문에 있는데, 그것은 “잃은 것을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을 했습니다.
4~5절입니다. “찾아내기 까지 찾아다녔고 찾아낸즉”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6절에는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길 잃은 양을 다시 찾았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잃은 양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진짜 말씀하시려는 것은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말씀은 7절입니다.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눅 15:7, 개정)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회개를 말씀하시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목자가 양을 잃어다가 찾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 “이와 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목자가 양을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은 100명의 의인 중에 한명이 회개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홉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이와 같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핵심은 한 마리 양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회개한 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이유는 2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은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보고 “이 사람 예수가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근 거리는 것을 보신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바른 뜻은 어떤 교회에 100에 성도가 있었는데, 그중에 회개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주님은 99명의 성도를 두고 회개하지 않은 한명을 찾아 가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목자 되신 주님께서 회개하지 않은 한명을 찾아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한 영혼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고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비유에서 99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간 것이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여기서 99마리 양은 이미 회개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한 99명의 성도는 이미 새 생명을 얻는 자입니다. 예수님처럼 능력이 있는 자입니다. 주님 안에 거한 자입니다. 또한 주님이 그 안에 거한 자입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길을 은 양에 해당되는 회개하지 않은 성도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성도가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은 사단이 함정을 파놓은 영적 들판을 헤메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져 있는 것들에게 두렵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는 것은 여전히 죄와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길 잃은 영혼에게는 회개가 답입니다.
어두운 시대에 두렵고 힘들고 답답한 시대에도 회개는 답입니다.

왜 회개가 답이 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양을 찾은 결과 때문입니다.
5~6절에 양을 찾은 목자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와서 친구들과 이웃을 초청해서 찬치를 했습니다. 그때 목자를 모인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우리는 이 주인의 즐거움을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조금 이해 할 수 있는 이 목자는 양을 경제적 논리로 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목자가 양을 경제적 논리로 본다면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친구와 이웃을 불러 친치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어깨는 명예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주인이 양을 가슴으로 않을 수도 있지만 어깨에 멘 것은 의도적이었습니다.

또한 주인이 베푼 잔치는 양 한 마리를 팔아도 할 수 없는 잔치입니다.
주님은 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해 주시는 것입니까?

회개의 기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하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천국은 늘 잔치와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별도의 잔치가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누구나 기쁘고 행복한 곳입니다. 그런데 별도의 이 잔치는 얼마나 기쁜 잔치일까요?

그런데 이런 잔치는 잃었던 양을 찾았을 때 있는 잔치입니다. 즉, 한 영혼이 회개할 때 있는 잔치입니다.
교회는 영혼의 목장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목자장 이라고 말씀하셨고 세상에 오셔서 목자로서 시범을 보여 주셨고 우리를 영혼의 목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누군가 길 잃은 양을 찾아서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길 잃은 영혼을 찾을 때 까지 찾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전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전에 교회 다니던 사람은 다시 데리고 나오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람을 회개시키라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회개 시키겠습니까?
이 말은 회개하지 못한 영혼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가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목자의 사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길 잃은 영혼이 목자의 품으로 달려오고 안길 것이며, 아무말 하지 않다도 회개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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