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능력

작성자
gfgc
작성일
2016-08-03 16:01
조회
587
감사의 능력
역대하 20 : 1~23


2016.07.03. 강북꽃동산교회 맥추감사 주일

지난 달(2016.06) 27일 미국,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는 남미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날 결승전에 참가한 아르헨트나와 칠레는 120분을 다 뛰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아 결국 승부차기로 우승을 가리게 되었는데, 결과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메시가 속해있는 아르헨트나가 2-4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칠레가 우승을 했습니다.

이때 스포츠계의 모든 언론, 카메라는 우승한 칠레로 간 것이 아니라 메시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야 모습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쉬워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 주장 완장을 빼 던지는 모습, 은메달을 목에 받기는 했지만 시상식장에서 바로 벗는 모습.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담아냈습니다.
그날 메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에게 국가대표 팀은 이제 끝났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챔피언이 되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대표 팀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은퇴 선언은 아르헨트나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르헨트나 국민들은 “메시 떠나지 마”라는 핏겟을 들고 캠페인을 벌였고, 대통령까지 나서 그의 은퇴를 막았습니다.

저도 메시의 팬입니다. 그의 축구는 멋있습니다. 그래서 그도 멋있습니다. 그는 아직 젊습니다. 국가 대표 팀에서 3년 이상 뛸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는 어려서 휘귀병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딛고 세계적 축구스타가 된 것입니다. 그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축구 신동들에게 희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국가 대표 팀에서 떠난 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때가 되고 이유가 적절하면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메시가 대표 팀에서 떠나면 안 되는 것은 떠나야 되는 이유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챔피언이 되지 못해 국가 대표에서 은퇴한다.”는 것은 오늘을 어렵게 사는 많은 사람의 희망과 꿈을 무너트렸기 때문입니다. 2등이면 안 되고 1등만 최고라는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1등하지 못해 대표직에서 은퇴하는 메시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얼마나 힘들까요?
그는 왜 이런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걸까요?

오늘 감사주일에 감사와 연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만일 성도라면 감사주일에 무엇을 감사한다고 할까요? 그의 마음에 감사는 있을까?

만일 누구든지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감사는 나를 지키시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중에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를 주목하려고 합니다.
여호사밧은 왕이 되면서 전국을 순회하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도했습니다. 또한 여호사밧은 각 지방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임명해 공평과 정의를 세우게 하므로써 하나님의 율법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까지 남아 있던 아세라 목상들과 산당들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모든 성읍에 군대를 튼튼하게 배치했습니다. 또한 유다 땅과 자기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의 성읍들에도 수비대를 두었습니다.

이만하면 왕으로서 아주 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해에 그를 두렵게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모압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해서 자기를 치러 온다는 것입니다.
1절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미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당한 일에 여호사밧이 두려움을 느겼습니다. 그것을 3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서 낮을 향하고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여호사밧이 왜 이렇게 두려워 하느냐입니다.
여러분은 이 여호사밧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동안 왕이 되어서 전국을 순회 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격려를 했고, 또한 각 지방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임명해 공평과 정의를 세우게 하므로써 하나님의 율법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성읍에 전에 없었던 성읍 수비대를 두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은 나라 곳곳에 세워진 아세라 목상과 신당을 다 제거했습니다.
이정도면 백성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아주 잘한 것 아니겠습니까? 국력도 튼튼하게 했을뿐 아니라 우상을 제거 했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알아서 도와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사밧은 지금 왜 두려워하는 것이죠?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5-6절에서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하 20:5, 개정)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라고 했습니다. 전쟁의 소문을 들은 여호사밧은 어느새 벌써 주의 성전 뜰에 가 있었습니다.
6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유다와 예루살렘 온 회중 가운데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하 20:6, 개정)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가 신앙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왕임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올 때 먼저 선정에 올라갔다는 것은 하나님중심의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고, 그의 고백 속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이 주 앞에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행동과 고백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사람이 준비를 하지만 그를 쓰시고 지키시고 이기고 지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여호사밧의 신앙을 추천합니다.
왕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지만, 그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다 갖추었다고 교만하지 않은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갖추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만 의지하는 미신적인 신앙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전에 올라간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구하는 내용은 8~9절입니다.
그가 구한 내용을 보면 평범하지만, 제가 보기엔 아주 확실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대하 20:8-9, 개정)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이는 우리가 주의 전을 건축하고 주의 전에 있는데,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할 때, 주의 이름은 여전히 성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전에 와 있으며 주께서 환란가운데서 구원하시지 않겠느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들은 환란이 오기 전에 성전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과 환란 때에 그들이 성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을 잘 이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극한 환란 가운서도 늘 승리했던 다윗의 고백을 들어봐야 합니다.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9:9)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시 122: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은 자기를 죽이기 위해 연합군이 오고 있을 때 군대를 점검하거나 전투준비를 하지 않고 주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어찌보면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가 군사를 동원해서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왕이 하나님앞에 잘한 것이 많기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성전에 올라갔더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 주시고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에 성경의 전체흐름이고 이 흐름을 오늘까지 계속되고 앞으로도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해석해야할 말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환란 앞에 두려워하지 마시기랍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먼저 동원하여 하나님이 일하심을 중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마다 성전을 가까이 하시고 지금까지 주님 앞에 받은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주님의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사밧이 금식을 선포하고 성전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대하 20:14, 개정)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란! 성령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날 성령님은 회중가운에서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던 레위 사람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야하시엘에게 임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문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 보겠습니다.
그 내용은 15~17절에 말씀입니다.
요약해 보면 다음입니다.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두려워 하지 말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너희는 내일 그들에게로 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만날 것이다. 이 전쟁에서 너희는 싸울 것이 없다. 여호와가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아직 성령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때에 하나님은 레위 사람 야하시엘을 통해서 아주 정확하고 선명하게 응답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마가에 다락방에 공식적으로 강림하셔서 인격적으로 마음을 열고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 다고 말씀하신 대로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중에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럼으로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물질과 권력보다도 먼저 주님을 인정하고 구하면 우리에게도 선명한 응답을 줄로 믿습니다.

여호사밧은 왕이지만 레위지파 즉, 주의 종 야하시엘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믿고 바로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고 찬양 했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이 왕처럼 함께 엎드려 경배하며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백성들과 함께 중요한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 내용은 오늘 본문에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줄 것입니다.

21절이 회의 내용입니다.
(대하 20:21, 개정)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군대 앞에서 찬송하자는 것이고, 그 찬송의 내용은 “여호와께 감사하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여호사밧이 왕이 돼서 첫 번째 치루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가 내리는 명령입니다.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노래하되 감사의 노래를 하자”
얼마나 무모하고 우수운 일입니까? 지금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모암과 암몬 사람들이 구름떼와 같이 산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뭐하는 것입니까? 군대 앞에서 찬송을 하며서 행진을 한다고 했습니까? 아직 이긴 것도 아닌데 감사를 한다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여호사밧과 백성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잘 봐야 합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노래하는 자들을 세워 감사 찬양을 하면 적이 떠나가는 것입니까?
마치 신유집회나 부흥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헷갈리게 22절에 보면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맘몬과 모압이 패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헷갈리면 안 됩니다.
실제로 여호사밧과 백성이 감사의 찬양을 불렀을 때 저들이 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말씀은 그게 아닙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말씀은 여호사밧은 전쟁의 위험 속에서도 무기와 군사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백성들과 함께 금식했더니 주의 성령이 야하시엘의 마음을 감동하여 메시지를 주셨는데, 여호사밧이 그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은 “전쟁은 여호와께 있으니 너희는 이 전쟁에서 싸울 것이 없고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모든 백성들이 다 그렇게 믿었다는 것입니다. 왕이 일방적으로 명령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왕과 모든 백성이 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왕과 함께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를 경배하고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노래하는 자들이 예복을 입고 감사 찬양을 부르러 나간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나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러 나간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찬양을 하며 행진한 것은 정말 순순히 하나님께서 싸우지 않아도 승리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감사를 한 것뿐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아직 적이 물러가지는 않았지만, 감사의 찬양을 드렸더니 하나님이 정말 적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역사가 일회적인 역사가 아니라 계속 있다는 것입니다.
30절입니다.
(대하 20:30, 개정)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미 승리를 약속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를 위협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예나 지금이나 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대체하기 보다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 믿으시고 감사 찬양 하시면 승리의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아직 승리를 본적은 없지만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을 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승리의 기적은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태평의 일이고, 하나님이 사방에서 평강을 주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능력입니다.
감사의 능력은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먼저 감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한 알의 씨앗이 30배 100배의 결심을 했다면 그거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심었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맥추감사의 의미는 지난날 지키신 것을 감사한다는 의미보다는 추수감사 때 큰 결실을 얻을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감사의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