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한 마음

작성자
gfgc
작성일
2016-08-03 16:19
조회
562
성결한 마음
역대하 29 : 1~19(10~11)

2016.07.17. 강북꽃동산교회

충청남도 태안의 한 시골 마을, 조용한 마을에 때 아닌 동물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8년 전, 숲속 마당이 있는 컨테이너 집으로 이사 온 할머니가 기르는 동물들의 소리입니다.
이곳에는 개, 고양이는 물론 오리와 칠면조까지 무려 100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한 가족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짐승들의 밥을 주기 시작한 할머니의 일은 점심때가 되어서 끝났습니다. 왜 할머니는 돈도 안 되는 유기견을 돌보는 일에 이처럼 열심을 다하는 것일까요?

40여 년 전 군인이었던 남편과 사별 후 홀로 4남매를 키웠다는 할머니, 화장품 방문 판매 등의 일을 하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재산을 사기로 모두 잃고, 자식들마저 인연이 끊겼다고, 마지막 함께 살던 막내아들 부부마저 며느리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암이 발견되었는데, 생존 률 5%밖에 안 된다는 담도암이 걸린 것입니다. 10시간 수술을 하고 회복 중에 유기견을 만났고 그는 그 때부터 유기견을 열심히 돌았는데, 8년지 지난 지금은 단도암이 완치되었다고 홥니다.

이 할머니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맑은 공기를 마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것은 유기견들에게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는 그를 살리는 그 어떤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25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성전에 올라갔을 때는, 성전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성전 안에는 불들이 다 꺼져 있었습니다. 그가 성전 안에 들어갔다가 기가 막힌 일들을 보았습니다. 성전 집기들이 부서져 있고, 먼지 속에 쳐 박혀 있었습니다.
더 놀란 것은 도무지 성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5절에 기록된 것입니다.
“더러운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밝히지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전에 들온 때는 아하스 때이기 때문에 28장 23~24절을 보면 무엇인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하 28:23-24, 개정) “[23]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24]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은 성결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고, 성전에 성결하지 않은 것들이 들어와 성전이 더러워 졌다는 것입니다.
즉, 다메섹의 신들이 성전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문이 닫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적들에게 죽고 자녀들과 부인들은 적들의 포로로 끌려갔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아무것도 아닌 우상이 성전에 들어왔다고 성전에 문이 닫게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천지를 창조 하신 분 아니십니까? 그런데 그까짓 나무로 깍아 만든 우상이 들어왔다고 그렇게 힘없이 물러서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무엇인데 성전기구들을 부수고 성전의 문을 닫게 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을까요?

2절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가 그 방법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전에 문이 어떤 이유에서 닫혔는데, 그 문을 열어야 합니다.

성전의 문은 전에 아하스왕 때 닫혔습니다.
성경은 그 일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하 28:24-25, 개정) “[24]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25]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에고)

성전의 문은 아하스 왕 때 이미 닫혔 있었습니다. 성전의 기구들은 아하스왕에 의해 다 부서졌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까?

놀랍게도 그것은 성결의 문제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볼 때, 하나님께서 성결(거룩)하게 구별해 놓은 것에 더러운 것들이 들어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히스기야 눈에 보여 진 성전은 더러운 것에 오염된 상태이고 더러운 자리를 만든 것은 오물에 빠진 백성들이 씻지 않은 상태에서 오물에 빠졌던 사람의 않자 있던 흔적을 아직 청소하지 않은 상태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도 그것들이 보여 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그 더러운 성전에 하나님은 역사 하실까요?
그 더러운 성전에는 과연 사람들이 올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계실까요?
더러워 진 것은 어떻게 치울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그렇게 작은 우상이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아세라 나무 쪼까리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더럽힐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그것은 더러움이 가지고 있는 악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큰 솥에 맛있는 국을 끓였다 하더라도 더러운 것(오물) 한 숟가락이 들어갔으면, 잡수시겠습니까? 전체를 다 버릴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교회 침체의 원인 중에 하나를 오염이라고 봅니다. 강단 강단에 세워진 개그 콘서트, 마술, 말장난(유머) 등은 거룩을 회손 시켰습니다.

문론 이것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8절에 “내버리사”입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더러워진 것을 어떻게 다시 성결하게 할 수 있습니까?

2절입니다. “성전의 전 문들은 열라”는 것입니다.
왜 문을 먼저 열어야 합니까?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더러운 것들은 치우기위해입니다.

이 말씀이 개인적으로 적용될 때 성전문은 무엇일까요? 우리 마음의 문입니다.
고전 3:16절에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일 때, 우리 마음의 문이 열려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이 켜져 있는지, 말씀의 떡상에 말씀이 올려려 있는지, 기도의 향은 피워져 매일 올라가고 있는지, 정규적인 예배의 번제는 드려지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내 마음의 선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 성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계 3:20, 개정)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문을 여는 게 중요합니다. 문을 열면 은혜가 들어옵니다. 치유가 됩니다.
열려진 여러분의 마음을 통해 풍성한 은혜가 들어오기를 축복합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문을 열고 두 번째로 성결을 이야기 했습니다.
(대하 29:5, 개정)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두 곳을 성경케 하라고 했습니다. 너희와 성전입니다. 모두가 성전입니다.(고전3:16)

성결이 무엇입니까?
“성결”이라는 말은 원어로 ‘구별되다’, ‘드려지다’,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즉, 성결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특별히, 깨끗하게 구별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결은 거룩이라는 말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거룩하게 구별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상과 섞일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럽고 악한 것이 하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물리치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여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영접하는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지만, 당신을 거부하는 죄인들에게는 떠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저들을 벌주고 죽이고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셔서 당신의 거룩함을 무시하는 곳에 함께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결의 문제는 싸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느냐 함께 하시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성결이라는 말이 36회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성결이라는 말에 케가 함성된 단어가 23번이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결케”라는 말이 23번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결케”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곧 ‘성결케 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합당하도록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준비한다는 말입니다(출 19:10; 수 7:13; 삼상 16:5).

그러므로 성결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으면, 우리는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룩하다 인정하지 않으면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결(거룩)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시고 내버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일 때, 내 마음의 성전에 물질의 우상이 세워 졌는지, 명예의 우상이 세워지지 않았는지, 성공의 우상이 세워지지 않았는지, 쾌락의 우상이 들어와 있지 않는지 말입니다. 만약 그런 것이 들어 왔다면,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이런 성전의 문제를 파악한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아놓고 두 번째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11절입니다.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히스기야는 어떤 의도로 “게으르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의도는 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나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약속을 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하나님의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 떠나가게 할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에서 더러운 것들을 없이하고 다시 떡상을 준비하고 정금등대에 불을 밝히면 하나님이 다시 구하는 성도들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원칙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 하시며 이곳을 통해서 주의 백성들을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기본은 성결(거룩)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교회를 거룩한 곳으로 구분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한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때 교회 지도자들은 거룩한 교회에 세속적인 섞이기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막 8: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기를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또한 디모데에게 (딤후 4: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레 18:3)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되 당신의 눈동자를 보호하시듯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말라는 히스기야의 말에 도전을 받은 레위인과 제사장은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12절에 “이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까지 그 일어난 사람들이 이름이 하나하나 기록이 되었습니다.
15절에 그들이 또한 그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케 하고 성전을 깨긋게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16절에 제사장 들도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깨끗게 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비로서 성전안에 떡상이 차려 졌습니다. 등불이 켜졌습니다.
18절에 먼지 투성이였던 그릇들이 깨끗해 졌습니다.
19절에 아하스 왕때 팽개쳤던 성기구들이 ㅏ시 전돈되고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았습니다.
이 일은 초하루에 시작하여 16일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성읍의 귀인들을 다 모아 성전으로 왔습니다.
수소를 잡고 제단에 피를 뿌리고 수염소를 끌어다가 안수하고 잡아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위하여 번제와 속제제를 드렸습니다.

왕에 의해 레위사람들이 제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번제를 드리기 시작할 때는 시로 노래하고 번제가 바칠 때까지 나팔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제사가 마쳐지자 왕과 그 함께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굽혀 하나님께 경배를 했다고 했습니다.
32~34 이날 회중이 가져온 번제물의 수는 수소가 70마리, 수양이 100마리, 어린양이 200마리, 수가 600마리, 양이 3,000마리 였다고 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제사였습니다.
34절에서는 그 규모가 어떠했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하 29:34, 개정)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이날 히스기아를 중심으로 드린 제사를 하나님은 어떻게 받으셨을까요?
히스기아는 어떻게 이렇게 잚은 기간에 하나님께 큰 제사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 답을 2절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라는 부분입니다.
히스기아 왕의 마음이 성전에 가 있고 닫혀진 문을 여는 일에 우선 했을 때 하나님은 그이 마음을 받아 주셨고, 열심있는 사람들을 붇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이지만 그렇게 성대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6절은 그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대하 29:36, 개정)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셨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다만 성전에 가서 성전의 문만 열었을 뿐인데 성전에서 더러운 것들을 치웠졌고 예배가 회복되었스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채워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31장 1절 하반절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가기들의 본업 기업으로 돌아갔더라.”고 했고, 5절에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다는 말은 수입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맥이 빠지고 힘이 없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힘쓰고 애써도 그 결과가 우리를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때, 히스기야의 성결운동은 어떠하십니까?
아하스에 의해 방치된 성전문을 열고 먼지를 떻어내고 우상을 끌어내고, 쳐 박혀 있는 그릇을 딱고 예배에 열심을 다하자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은 어떠십니까?
(대하 29:36, 개정)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이 축복이 여러분의 축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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