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에 오신 예수님

작성자
gfgc
작성일
2017-08-31 13:07
조회
385
호숫가에 오신 예수님
(누가복음 5:1~11)
2016.7.31.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본격적인 휴가의 계절입니다. 휴가철을 맞이하여 사람들은 산과 들 계곡으로 떠납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에도 사람들이 구름떼와 같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휴가철도 아닌데, 그리고 지금 여기는 이른 아침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입니까?
자세히 보니 무리들 가운데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따라 이 호숫가로 온 것이 였습니다.
성경은 그때 상황에 대해 다음과 표현했습니다. 1절에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게네사렛 호숫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휴가를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것에 오셨기 때문에 온 것이고,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날 예수님은 조용한 호숫가를 배경으로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참 좋은 배경입니다. 그것에 모인 무리들은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문론 다는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님이 호숫가로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관심은 호숫가에 있는 배에 두시는 것입니다. 호숫가에는 지난밤 조업을 나갔던 배가 그물을 씻고 마무리 하는 시몬과 요한의 배가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전하시던 말씀을 중단하시고 배가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모두 빈 배였습니다. 지난밤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었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건 것입니다.
주님은 시몬의 배로 가까이 가셨습니다. 주님은 시몬에게 아주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은혜가 아니겠습니다.
우리 장로교는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인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절대 인정하고 감사하는 교회입니다. 개혁주의 교회에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1) 오직 은혜로(Sola Gratia)_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은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으며,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며,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2)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_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완성된 책으로 누구도 그 말씀의 내용을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완성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계시로 오직 성경만이 성도의 삶과 구원을 위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 원리입니다.
3) 오직 믿음으로(Soli Fide)_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속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을 수 있습니다.
4) 오직 그리스도로(Solus Christus)_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은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로서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며,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만 사후의 심판에서 죄에 대한 대가로 영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고,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죄 값을 다 받고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5)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Soli Deo Gloria)_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과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우리에게 내려진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우리의 노력과 헌신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실패와 좌절 속에 빠져 구원의 여망이 없는 사람에 다시 일어 설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오직 은혜입니다. 주님이 누구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그리고 가시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주님이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다가가고, 누구의 이름을 부르시고, 누구를 만지시고, 누구에 말씀하셨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주님께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런 사랑의 관심으로부터 시작해서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실패와 좌절 속에서 살고 있었고 아무런 구원의 여망이 없었을 때,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로 오셔서 손을 내미셨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예수께서 피 흘려 이루신 화목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와 이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최고의 은혜이십니다. 그래서 은혜의 원천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은혜의 원천이신 주님은 시몬의 배에 타시길 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어기서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주님이 소경의 눈을 만지면서부터 주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낫고자 하느냐”고 질문을 하면서부터, 주님이 수가성 우물가에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말하면서부터 아니면, 18년 된 혈루증 환자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면서부터 여기에서부터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럼으로 이 때, 누구든지 주님의 요청에 반드시 선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시몬 베드로의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가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지난밤 조업에서 실패해서 힘들어도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다 잊고 주님의 요청에 대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시몬은 주님을 영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의 배를 타시고 시몬에게 말씀했습니다.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게 하라.” 시몬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배를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배의 자리를 잡으신 후에, 베드로와는 전혀 상관없이 무리들에게 계속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절에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시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들을 가르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서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주님이 요청해서 배를 내어드렸고, 주님이 요청하시는 대로 배를 운전했는데, 주님은 자기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위해 많은 헌신을 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자게에게는 별다른 특별한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리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은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는 바닷가에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는데, 정말 큰 은혜는 배안에 더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배 안에서 노를 잡고 있던 시몬에 제일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시몬이 예수님을 자신의 배 안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몬이 은혜의 원천되신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오신 것 차제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시몬의 배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금은 말씀으로 우리들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서 온 세상 무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온 세상 무리들에게 오신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각 사람들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군중들 속에 거하시다가 가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군중들 속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들어가시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인생 안에, 사업 안에, 배 안에 들어오시기를 바라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사업안에 들어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가정에, 내 사업장에 내 인생의 배를 타시기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군중 속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만 받는데 만족하기 마시고 그 예수님은 나의 인생에 배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 들어오시기를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 구원이고 자녀가 되는 것이 승리는 것입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사실 오는 예수께서 호숫가에 오신 것은 베드로의 배에 들어오시기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정확하게는 베드로의 인생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배안으로 들어오시기를 원하신 것입니까?
4절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지금 베드로의 상태는 고기를 잡으러 가기 힘든 상태입니다. 지난밤 나름대로 열심히 고기를 잡아 봤지만, 실패를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베드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어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그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아보라니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시몬은 “다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호숫가 깊은 곳으로 갔습니다. 지난 밤 수고를 하였으나 한 마리의 고기를 잡은 것이 없지만, 그리고 지금은 고기를 그만 잡으려고 이미 그물도 다 정리하였지만, 그는 다시 깊은 바다로 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시몬은 어떻게 다시 고기를 잡을 마음이 생긴 것입니까? 무엇이 그에게 다시 그런 결정을 하도록 영향을 주었습니까? 우리는 그 이유도 4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4절에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시몬이 다시 호숫가로 고기를 잡으러 가게 된 것은 말씀을 마친 이 후였습니다.

오늘 우리 개혁교회는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직 믿음으로(Soli Fide),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속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을 수 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배에 오시는 은혜를 통해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주시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몬이 호숫가에 다시 나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배에서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믿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 은혜 절대 믿음이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밤 밤새 수고하였어도 잡은 것이 없었고, 그래서 오늘은 더 이상 그물을 내릴 마음조차 없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그물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롬 10장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때는 실패하여 살 희망초자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좌우를 다 살펴봐도 희망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 힘과 소망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믿음의 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이 게네사렛 호수가로 오신 것은 시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시대의 초고의 선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선물로 주시는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하나님이 주시는 큰 믿음의 선물이 주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선물로 받은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때 시몬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물고기들이 그물에 들어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지난 밤 자기와 함께 실패를 맛보았던 친구를 불러 배에 고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날 두 대의 배에는 물고기가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시몬에 심령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시몬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생겼습니다. 자신을 주체 하거나 통제 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큰 죄인라라는 생각입니다. 시몬은 예수님께 바로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를 고백하고 ‘나를 떠나소서.’(8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시몬이 왜 이러는 것입니까? 물고기를 많이 잡은 것이 잘 못됐습니까? 아침에 이렇게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까? 어부가 물고기를 많이 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물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죄인이라는 시몬의 고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주님이 그 호숫가에 오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은혜의 원천되신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오셨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시몬에 배에 들어 오셨고, 시몬과 대화를 하시고, 시몬에게 고기를 잡게 하시는 동안 주님의 은혜가 시몬에게 임했고 그 은혜는 그의 죄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자기 스스로가 도무지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원죄에 대한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곳에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주님이 그 아침에 그 호숫가에 오시지 않았다면, 시몬은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깨닫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감동되고 의욕이 생기고 예수께로 나와 죄를 용서함 받고 구원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심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남이라고도 말합니다. 예수를 영접한 모든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이 한 번씩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한번은 있어야 합니다.
막 1:4을 보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회개의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세례를 물세례라고 부릅니다. 물로 몸을 씻듯이 심령의 죄를 씻는다는 상징을 담아 의식을 베풀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을 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은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함께 역사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지금 시몬 베드로에게는 물로 죄를 씻은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는 목사님이 한 부족 복음화를 위해 정말 오래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서 전도해왔답니다.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몇 사람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답니다. 더 이상 부흥이 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답니다. 그러던 중 한 여인 예배 도중에 일어서더니 다음과 같은 날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아무도 몰래 교회의 쌀을 가지고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다른 여자 성도가 또 일어나서 회개의 고백을 하더랍니다. ‘저는 남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데 주인 몰래 계란 하나를 집에 가져온 일이 있습니다. 죄를 회개합니다.’
이 고백을 듣던 교인들이 앞을 다투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이후 교회에 뜨거운 성령의 강림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 마을에 큰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호숫가에 오시고 베드로에게 오시고 오늘 우리들에게 오신 이유는 은혜를 주시고 회개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지금 당장 축복, 성공, 부흥, 성장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회개하면 이 모든 것들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몬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시몬에게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
그 말씀을 들은 시몬은 바로 배를 육지에 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주님은 시몬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제자가 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하거나 노력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께서 호숫가에 오시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를 타시겠다고 할 때, 이미 베드로에게는 거절 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하여 예수님께 배를 내 드렸고, 예수님 발밑에서 키를 잡고 말씀을 들을 때는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는 자갈이 파헤쳐지고 가시덤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이었고, 그에게 주님의 명령은 순종하기에 넉넉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결과 하나님이 예비한 물고기를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날 호숫가에 오신 이유는 오늘 시몬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신 후 순종하여 제자가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사람은 다 지원하는 종교가 아니라 주님이 부르시는 사람이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명하여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특별한 종이 된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아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결과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안 것이 나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아시고 불러 주신 줄 믿습니다.
한 사람도 멸망 받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오셨고 그 사람들을 부르셔서 각자의 사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부름에 순종하여 주님의 제자로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오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모두가 다 은혜를 받고 믿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다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각 사람에게 은혜와 믿음과 사명을 주실 때 아멘으로 받는 사람들이 제자로 성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주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이 호숫가에서 하신 것처럼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길 바라시고, 그들을 가르쳐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주님을 따르도록 부르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8장 18절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라는 말씀을 마음에 두시고 부름 받은 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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