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저항의 시대

작성자
gfgc
작성일
2019-09-28 11:39
조회
6
 

단 1:8-16(1231)


2019.09.21.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그 자리는 자신만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편에서는 자격이 없으니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높은 자리 가지고 복잡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믿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까요? 무엇인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오늘의 주인공은 다니엘입니다.


성경에서 다니엘은 참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느브갓네살왕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는 제 이인자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느브갓네살왕이 죽고 왕이 바뀌었는데(벨사살왕이 다스릴 때) 또 다시 제3인자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바벨론이 망한 뒤에(잠시 메대라는 나라를 거쳐서 바사 즉)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패권을 장악했는데도 다니엘은 여전히 왕의 총애를 받고 또 최고위직에 오릅니다.


이게 도대체 뭘까요? 포로로 끌려간 나라에서 이인자 자리에 오르고, 왕이 바뀌었는데도 계속해서 고위직에 등용이 되고, 심지어 나라가 바뀌었는데도 또 최고위직에 발탁이 되었습니다. 기간으로도 수십 년 동안 출세 가도를 달려왔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다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은 지금도 이란에서는 다니엘을 선지자로 추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사의 수산성이 있던 이란의 슈시(Shush)라는 도시에 다니엘의 영묘가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인 이란 사람들이 영묘를 조성해 놓고, 정성을 다해서 참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중앙아시아인,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라고 하는 도시에도 다니엘의 영묘가 있습니다. 다니엘의 시신 일부를 가져다 영묘를 만들고, 정성을 다해서 참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니엘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과 이슬람 사람들은 서로 앙숙입니다. 그런데 앙숙인 이슬람 사람들이 자기 조상도 아닌 유대 사람의 영묘를 만들고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받드는 것일까요?


또 한 다니엘은 이슬람교가 시작되기 수백 년 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저들은 다니엘을 자기들의 선지자로 숭배하는 것일까요?


너무도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설이 분분합니다. 그저 미스터리일 뿐입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이런 인물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전 650년 유다의 여호야김 왕 제3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왕족과 귀족들 몇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다니엘이 이들 중에 포함되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가서 고초와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지만 바벨론 사람처럼 교육받고 살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심지어 이름도 개명 당했습니다. 다니엘 즉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의 이름을 버리고, ‘벨드사살’ 즉 “벨이여 생명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이름을 쓰게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다니엘은 세 친구와 함께 특대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의 명으로 특별대우를 받으며 3년 동안 무상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바벨론의 동냥으로 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니엘은 특별대우받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람들과 자녀들과 다르죠? 다니엘 왜 이러는 건가요? 제일 저자로 써주겠다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잘만 하면 높은 자리 주겠다는데 말입니다. 다니엘은 굴러들어온 복을 차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우선 왕이 제공하는 음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음식 자체는 싱싱하고 살찌고 맛있는 음식일지 모르겠지만, 특별 음식 자체가 율법에 어긋나는 음식입니다. 그 풍성한 음식들은 대부분 우상 제단에 바쳐졌던 것들이고, 고기는 율법에서 금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8절입니다. (단 1:8, 개정)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니엘이 큰 뜻을 정했는데, 그 뜻은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니엘이 자신의 몸을 더럽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름 아닌 왕이 내린 음식입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궁중요리입니다. 맛있는 고기와 최고의 포도주입니다. 지금 다니엘이 정한 뜻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뜻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방 땅에 끌려와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을 지켜가겠다는 것입니다. 우상의 땅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켜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다니엘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사실 다니엘이 이렇게 뜻을 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다니엘이 이렇게 뜻을 정하고 살아간다면 이방 땅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박해를 받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일은 왕명이기 때문에, 뜻을 정하고 그대로 행한다면 자칫 큰 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이런 큰 뜻을 정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렇게 뜻을 정하고 살라고 명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하라고 권하지도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다니엘이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은 다니엘의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 헌신입니다. 신앙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그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섬기느냐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전혀 다른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은혜에 대해서 감사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처럼 살아야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아닙니까?


다니엘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아름답고 멋있게 가꾸었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라고 생각하고 거룩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다는 결론입니다. 그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더니 하나님이 그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던 사람 다니엘을 높이신 것입니다. 비록 포로로 끌려왔어도 왕들의 총애를 받아 높은 자리에 올랐고, 높은 자리에 올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정치를 잘해서 그 땅의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고, 그가 남긴 영향력 때문에 비록 종교가 달라도 자손 대대로 존경을 받게 하셨습니다.


(잠 3:6, 개정)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오늘 아침 청년들과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마지막 시대, 참 혼탁하고 유혹이 많습니다.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런 시대를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처했던 환경도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보다 그리 쉬운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성경은 어느 시대나 환경을 뛰어넘어 믿음의 사람들에게 거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이 시대를 초월해 우리들에게까지 거룩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분명합니다. 사망의 권세에 있는 우리의 몸을 주님의 핏값으로 삿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핍박을 감수했습니다. 자신의 거룩한 몸을 세상에 것으로 더럽힐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니엘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살던 시대에 대해선 히브리서 11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 11:26, 개정)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톱 사자


한국교회 초기에 사람들도 핍박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저도 약간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이 겪었던 박해의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칫 다니엘의 이런 불굴의 신앙이 필요 없다고 치부할 수가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스기니스가 쓴 [저항]이라는 책을 보면 오늘 우리 시대를 “신앙의 변절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시대는 신앙의 포기를 요구하는 시대였다면, 오늘 우리의 시대는 신앙의 변절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의 시대에는 박해를 통해서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면, 오늘은 유혹과 미혹을 통해서 신앙의 변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으로부터 자기 교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자부하고, 대부분의 교인들도 인정하는 한 권사님이 있답니다. 큰 딸이 고 3인데 공부를 참 잘해서 이분의 자랑이고 소망이랍니다. 물론 이 딸도 교회에 잘 나오고 나름 신앙생활 잘 한답니다.


그런데 학교에 시험이 임박하면 권사님은 딸에게 이렇게 말한답니다. “우리 딸, 이번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지 열심히 준비해야 돼!”그러면서 주일 아침 학원에 데려다주며 또 이렇게 말한답니다. “우리 딸 오늘은 교회 쉬고 학원에서 특강 들으며 열심히 공부해. 엄마는 교회에 가서 기도할게” 그리고는 자기 혼자 교회로 와서는 하나님께 이번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신앙의 변질입니다. 이분에게는 어느새 자식이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하시는 말씀과 복은 외면하고 세상의 복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핍박이 어려울까요? 저항이 어려울까요? 저항이 더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12:2에서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저항’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풍조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세상 풍조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다며 추구하는 세속주의 세상 풍조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는 다니엘처럼 박해에 저항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유혹과 미혹으로 우리의 신앙을 변절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저항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속주의 물결이 거대한 해일처럼 모든 사상, 가치관, 사람들의 생각을 뒤덮어버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의 올바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저항하며 믿음을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고 음식을 거절했을 때,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시험해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왕이 하사한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보다도 더 강건하게 해주셨습니다. 또 한 조서의 명을 어기고 기도해서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사자들의 입을 막으셔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처럼 저항하는 삶을 살게 될 때 큰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 죽음의 위협이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 풍조에 저항하며 맞설 때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응원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더더욱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높이셨던 것처럼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주일을 범하며 공부한 아이들보다,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며 공부한 아이들을 더 높이 세우실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그 인생 내내 그 아이들을 높이 세우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죽고 사는 일, 우리의 성공하고 실패하는 일, 우리의 행불행 모두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적용


오늘 우리 주변에 스스로 높아지려 몸부림치다 추한 꼴이 드러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대단한 것처럼 행세하다가 민낯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처럼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높아지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높이실 것입니다.


벧전 5: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다 보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우리를 높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 그대로 다니엘을 높이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를 높이셨습니다. 그것도 전무후무하게 높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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