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제사장이 된 사람

작성자
gfgc
작성일
2019-10-05 10:51
조회
3

창세기 14장 17~24절


2007.11.11. 강북꽃동산교회. 2019.07.28. 강북꽃동산교회


어떤 교회 장로님은 새로운 해가 되면 개 세 마리를 사 오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두 복스러운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하나에겐 초복이 또 하나에겐 중복이 그리고 마지막 에겐 말복이 그리고 초복이 되면 초복이를 불러서 너는 내 몸이 될지라. 중복이 되면 중복이를 불러서 너는 내 몸이 될지라. 말복이 되면 너는 내 몸이 될지라. 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제일 먼저 받는 선물은 이름입니다. 사람은 이름이 부여된 때부터 그 이름에 명예를 걸고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어렸을 때는 그런 것을 잘 모르고 자랍니다. 그래서 그 부모나 가족이 이름에 대해서 신경을 써주고 이름값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면 아이는 스스로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름값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신약시대에는 바울, 베드로 요한 바나바 등


성경에는 이름은 있으나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녹이라는 인물입니다. 성경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고, 활동 내역도 없습니다. 다만 창 5:24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그런 분이 한 명이 더 나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인데 구약 성경에 이분에 대한 기록이 딱 한 번 나옵니다. 그리고 그 기록도 매우 간단합니다. 그분의 이름이 신약성경에 다시 나오는데 이번엔 10번 이상 나옵니다. 누구입니까? 네, 멜기세덱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를 소개할 때 살롬 왕이면서 제사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를 소대할 때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히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 6:20) "그리로 앞서가 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오늘의 제사장은 멜기세덱의 기준에 따라 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고, 제사장은 모세 시대에 있었던 제도인데 멜기세덱은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은 신비로운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언제 그를 제사장이 되게 했냐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가 누구인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그가 누구인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 14:18, 개정)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라고 말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를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살렘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옛날 아직 본격적인 국가가 형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하나의 부족이 살렘에 거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멜기세덱은 옛 예루살렘 땅에 거주하던 부족의 족장 정도 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분을 집중할 것인데, 매우 신비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유는 멜기세덱이 성경 최초로 제사장이라 불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 본격적인 제사 제도가 형성되기 전, 적어도 500년 전에 그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도대체 누가 그를 제사장으로 세웠으며, 또한 그는 제사장으로 무엇을 했다는 것입니까? 제사장에 얼마나 중요한 직분인데,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방인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으며 또 어떻게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는 궁금한 인물입니다.


그러면 이토록 베일에 가려진 인물인 멜기세덱이 제사장이 되고, 성경에 등장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와 아브라함과의 만남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가 아브라함을 만나서 한 행동들 때문입니다.


때는 아브라함 시대에 가나안 땅 주변에 국제적인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북방의 거대한 연합군이 요단강 동편의 남부지역 다섯 개 소왕국 연합군과 싸워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남부지역에 왕들을 12년 동안이나 저들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를 거역한 것입니다.


그러자 북방 연합군이 다시 남부지역을 쳐들어와 무참히 공격하고 재산을 다 빼앗아 가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때 소돔 땅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저들에게 끌려가고 재산도 다 빼앗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롯은 누구입니까? 그가 고향을 떠날 때 함께 왔던 형의 아들 조카가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훈련 시켰던 군사 318명을 이끌고 저들에게 쳐들어가서 롯과 그의 가족들, 빼앗겼던 재산을 모두 찾아왔습니다.


성경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창 14: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데, 아브라함의 군대를 영접하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롯이 거주했던 소돔에 왕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멜기세덱입니다.


오늘 우리는 멜기세덱에게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였다고 했습니다. 살렘의 왕이자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그가 제사장이라 것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집행하는 성직자입니다.


구약에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선정에 나와 제사를 드리는데 그 형편에 맡는 제물을 가고 나옵니다. 주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주로 가지고 나오지요. 그러면 제사상은 그가 어떤 제사를 드리러 왔는지 알아보고 그것이 번제라면 제사를 드리려 나온 자에게 그가 끌고 온 제물에 머리에 먼저 안수를 하게 한 후 그에게 칼을 줍니다. 그러면 제자를 드리러 온 자는 그 칼로 자기가 끌고 온 제물에 목을 찔러 피를 내어 그 피를 제사장에게 줍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피를 밭아 제단 사면에 뿌리고 죄 사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성직자입니다. 구약에 모든 종교에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오늘에는 천주교에 신부, 교회에 목사들과 같은 직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제사장 제도가 달라졌습니다.


(벧전 2:5)“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9)“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신 이후로는 오늘 저를 포함한 우리 성도들이 제사장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멜기세덱, 그는 왕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멜기세덱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시대에는 우리는 벌써 모두가 제사장이었는데, 그 제사장 역할을 어떻게 했느냐 말입니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제사장이 되었으며, 어떻게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거입니다.


성경은 저와 여러분이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습니까? 저는 7년의 신학과 강도사 고시와 목사고시를 통해서 교단에서 시행하는 안수를 받고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는 제사장이 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선 율법대로 적용한다면 제사장은 유대인 중에서 레위 지파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처럼 신학을 한 사람은 조금 괜찮을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다 제사장이라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사장 여러분!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근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히 6:20) "그리로 앞서가 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이 말은 간단히 말하면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제사장은 유대인 중에서 어느 지파에서만 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레위 지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지파입니까? 유다지 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 말씀을 푸는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레위지파도 아니시면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유대인도 아니고 레위지파도 유대지파도 아닌데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왕 같은 제사장이 말입니다.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처럼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습니다. 예수님처럼 제사장이 되었다고 하니까 이해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제사자이 될 수 없는 유다 족속인데 제사장이 된 것은 멜기세덱은 반차를 쫓아서 되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이 “반차”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차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사전에서 반차는 =헬라어(탁시스)는 ‘질서 있게 정렬함’이란 뜻, 문자적으로는 ‘차례’, ‘순서’, ‘서열’이란 의미입니다.


그럴 때 (히 5:6, 10). 히브리서 기자가 반차라는 단어를 쓴 의도는 다음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모두 레위 지파의 혈통을 따라 세워진 불완전한 직책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 직분은 신적 기원을 갖는 것으로서, 멜기세덱의 계통(계열, fixed order)을 따라 세워진 것으로 완전한 직책이다.”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위에서 멜기세덱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그의 제사장 직분은 세상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창조하여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 이기는 한데 흔히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제사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제사장이라는 것입니까?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제사장이 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구약의 모든 제사장이 지파와 혈통을 따라 제사장이 되었다면 예수님은 그런 지파의 혈통을 따라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고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격도 안 되는데 제사장이 되었으니 제사장으로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누구처럼 말입니까? 멜기세덱처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 어떻게 살았습니까?


18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라함의 군대를 환대했습니다. 가족과 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재에 나가서 승리하고 돌아온 그들을 위해 승리를 잔치를 열어 축하했습니다. 지치고 곤한 그들에게 풍성한 음식을 제공하며, 위로하고 새 힘을 얻게 했습니다. 진심으로 저들을 환대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들에게 말하려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멜기세덱은 당시 왕이면서 제사장이지만, 전쟁에서 지쳐 돌아온 군사들에게 직접 나아가 환대했습니다.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서 율법 시대 지사장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율법 시대 제사장은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섬김 받기를 즐겨 했고 권위적이고 정치적이었지만 멜기세덱은 달랐습니다. 나가서 종을 섬겼습니다. 군인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멜기세덱처럼 섬김의 제사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저들이 지쳐 있지는 않은지 다치지는 않았는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시험에 들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된 우리의 삶인 줄 믿습니다.


오늘 성경에 멜기세덱에 다른 모습은 안 보입니까?


본문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위하여 복을 빌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는 보석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즉, 제사장에게는 축복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행정적으로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우리 교회에서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저 하나입니다. 목사에게만 축복권이 있습니다. 전도사도 안됩니다. 목사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총회 법적으로 그런 것이지 멜기세덱의 반차는 아닙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면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축복권이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이웃을 위해 심지어 유리보 더 권력이 있는 나라의 지도층을 위해 복을 비는 권한이 있습니다.


오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멜기세덱이 누구입니까?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인데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이미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큰 복을 받은 것은 이미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러듯 우리는 복을 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수없이 베풀고 복을 빌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명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목회하던 3분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테버너클”에서 목회하신 스펄전 목사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목회하신 모건 목사님, 그리고 크라이스트 교회에서 목회하시던 메이어 목사님이었습니다.


당시 스펄전 목사님은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받을 만큼으로 유명했고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모건 목사님은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교회에서 사역하는 위대한 성경 교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서 크라이스 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메이어 목사님은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메이어 목사님은 이러한 훌륭한 목사님들 사이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불평하며 그들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만의 축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교회의 빈자리들을 채워 주소서. 부흥을 일으켜 주소서. 저들 못지않은 교회가 되게 하시고 저도 유명한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럴수록 교회는 더 약해져만 갔고 자신이 복을 잃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기도 중에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료들을 축복하고 후원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주여 내 오른쪽의 스펄전 목사를 축복하옵소서, 내 왼쪽의 모건 목사를 축복하옵소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데, 놀랍게도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복이 흘러넘쳐서 자신의 심령 속에까지 넘치도록 채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네 교회도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자신도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당시 런던의 빅 3라 일컬어질 정도로 훌륭한 목사님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모두를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축복은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 모두를 흥하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축복하는 사역을 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20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 찬송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북방의 연합군 그 강력한 군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신이 얻은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멜기세덱의 찬송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멜기세덱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세상에 파송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 세상 사람들을 환대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축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아직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적용


우리 교회의 부흥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성공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웃을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섬기고 나라를 섬기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부흥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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