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내 집에 오지 마소서

작성자
gfgc
작성일
2019-10-06 13:43
조회
2

마태복음 8장 5~18절


2017.02.12.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어떤 교회에 새 신자가 등록했나 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는데 문이 안 열리는 것입니다. 분명 인기척이 있는 듯한데, 아무리 노크를 해도 문은 열리지 않자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메모로 남기고 갔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그리고 주일이 되었습니다. 심방을 받았던 성도가 목사님께 쪽지를 하나 건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어 보았더니 거기에 창세기 3장 10절에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세상에 모든 종교는 사람이 신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신이 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찾아오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짓고 있을 때, 그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가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로 내려오셨을 뿐 아니라 죄지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들 마음 깊은 곳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의 장교의 하나로서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수장입니다. 우리나라로 군대 제도로 말하면 중대장 계급쯤에 해당합니다.


로마가 유대를 점령했을 때, 말 타고 몇 명의 호위병과 함께 유대를 다니는 백부장은 꽤 위엄 있어 보입니다. 이런 백부장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은 가까이서 보지 않고 멀리서 보면 상당히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자기의 하인 중에 하나가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몹시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중풍으로 쓰러진 부하가 있다면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시 로마가 유대를 점령하고 있으니 자기들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병원이 있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한 것은 백부장 정도의 지휘에 있는 사람이면 그 수하에 늘 아픈 사람이 있을 턴데 그때마다 이렇게 부장이 직접 쫓아다니느냐는 것입니다. 아래 50부장 즉, 소대장이 알아서 잘 챙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사실만 보아도 백부장은 참 좋은 사람 같기는 합니다. 그 아래 있는 부하들은 참 상관 장 만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어색하고 이상한 것은 로마가 유대를 점령하고 있을 때, 주둔군의 장교가 한 유대인을 찾아와 무엇을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부하를 위해서 직접 찾아온 것을 보아서도 대충 알 수는 있었지만, 로마의 장교가 유대인을 대하는 호의적인 태도입니다. 얼마든지 권위적인 모습으로 명령할 수도 있겠고 강제로 데리고 갈 수도 있었을 턴데 자기가 직접 와서 겸손하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태도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람에 대해서 감동을 받으셨는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고, 한마디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7절)


그런데 우리는 백부장에게서 아주 이상한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 하인이 중풍으로 누어 몹시 괴로워한다고 했던 백부장이 “내 집에 오지 마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 왜 이러는 것입니까? 자기 부하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러 온 것 아닙니까? 예수님도 그렇게 알아들으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도 가서 고쳐주신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성의를 무시하고 “내 집에 오지 마소서”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백부장이 바리새인들과 짜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누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이 백부장이 좋은 사람이고, 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예수님께 왔다면 예수님이 못 가시겠다고 해도 가시자고 부탁을 드려 모시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백부장은 스스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자기 집에 오시지 말라고 하시는 걸까요?


우리는 오늘 백부장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최고의 복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백부장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 백부장이 자기 집에 오심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백부장에게 무시를 당했어. 백부장이 예수님을 함부로 대했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그날 백부장은 로마 화려하고 권위적인 장교의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왔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주면에는 호위병 몇몇 함께 왔을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 얼마나 당당하고 위엄 있어 보입니까? 반면 늘 정해진 휘장 같은 옷에 햇볒에 그을린 검으 수리한 예수님은 왠지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가서 고쳐 준다고 하는데 내 집에 오지 말라니 홀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어쩌면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지금 백부장과 예수님의 대화 내용은 편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 복음사역에도 권위를 떨어드리는 일 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거절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런 사실을 오히려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믿음 때문입니다. 백부장에게는 사람들이 감히 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믿음과 다른 것입니까? 오히려 남들이 모시고 가고 싶어도 모시고 가지 못하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고, 그분 앞에 중풍으로 쓰러진 하인을 보여주고 예수님이 손을 얻고 기도하시면 지금 당장 일어서게 될 줄 믿는다고 하는 것이 큰 믿음 아닌 것입니까?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란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8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백부장의 말 좀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는 주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집의 하신이 넉넉히 낳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백부장에 생각할 때 예수님은 너무도 귀하신 분이시라서 감히 내 집처럼 천한 곳에 모시 기기 너무도 송구스럽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백부장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는 예수님을 뵈올 때 감히 예수님 앞에 서있는 것조차도 부끄럽기 한이 없는 죄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종의 이야기를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관심을 가지시면 어디에 있든지 낳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종의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 주님이 직접 오신다고 해서 얼나마 황송하옵고 당황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그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에 성부 하나님님과 함께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써 지금도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시고 귀신들을 명하여 쫓아내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한마디면 넉넉히 자기의 종을 중풍의 자리에서 일어서게 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집에 오신다고 했을 때 “내 집에 오시지 마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백부장의 의도를 아신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셨습니까?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느라."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놀라셨다"라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면서 백부장의 이런 믿음을 전혀 모르고 집에 가자고 하셨고, 모르고 계셨다가 지금 아시고 놀라신 것이냐는 부분입니다. 아셨다면 왜 가셔 고쳐 주신가고 하셨고, 지금 놀라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참 의도를 10절 하 반절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에 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나는 이스라엘 중에서 최고의 믿음의 사람을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백부장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서 본 믿음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입을 열어 딱 한마디 할 때부터 벌써 알았습니다. 저도 발견했습니다. 6절에 “이르시되 주여”라는 부분입니다. 8절에서 “이르시되 주여”라는 부분입니다. 백부장은 처음 뵙는 예수님 앞에서 처음 입을 열 때 “주여”라고 했고 말을 할 때마다 “주여 주여”라고 했습니다. “주”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대로 유대를 장악하고 있는 로마 장교에게 “주”는 오로지 로마의 황제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백부장에게 있는 예수가 메시아이며 왕이시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감히 주 예수를 집으로 모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당시 하늘과 같은 로마의 황제가 집으로 간가고 하면 무조건 감사합니다.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물며 로마의 황제와 비교할 수 없는 만왕의 되되신 주께서 집에 오신다고 하는데 어찌 쉽게 오시라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부장의 믿음을 다 알고 계신 주님은 새삼 놀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1~13절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11~12절인데 이 백부장과 같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없으면 고백할 수도 없고, 고백이 없으면 유대인 일지라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13절에 백부장이 믿음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대로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지 않았지만 하인은 중풍병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준비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2017년 하나님이 놀라실 만한 믿음의 고백하나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용


그동안 우리는 백부장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살자가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우리 집에 오셔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른 집은 몰라도 예수님이 내 형편과 사정을 아신다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주 앞에서 수고한 것을 아신다면 예수님은 우리 집에 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님에 대한 서운함을 도로하는 분들 계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셔, 역시 예수님도 돈 많은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으며, 특별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혹 우리 중에도 그런 분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믿음을 먼저 보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분이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어느 곳에서나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말씀으로 병들을 치료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내 집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의 현장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이 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믿음이 없기에 예수님이 계심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 계시는 것을 알면서도 게이치 않고 살았던 것 아닙니까?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결단


다시 백부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백부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백부장이 믿음대로 갈 때 하인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네 믿음대로 되었으니 가라는 것입니다. 질병, 사업, 직장, 가정의 문제가 네가 믿은 대로 되었으니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도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나중이고 문제 해결도 나중이고 어쨌든 먼저 오셔서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신앙생활에 큰 오류입니다. 이미 오셨고, 이미 거하시고 이미 돕고 계시는 하나님을 다시 모시려는 것은 신앙의 오류입니다.


백부장은 결코 예수님은 집으로 모시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님께 온 것은 자신의 믿음을 보이고 그 믿음을 통해 하인이 치료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즉, 주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주님은 공식적으로 허락하셨고 백부장은 응답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치유의 놀라운 은총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까? 그래서 예배 후 주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시려고 하시진 않았습니까? 그것은 신앙의 오류입니다. 이미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집에도 계십니다. 내 사업장에도 계십니다. 오늘은 우리의 믿음을 보이시고 신앙의 고백하시는 날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가라. 서라. 하라. 등”의 응답을 받으시는 날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주님의 은성을 들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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