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옷의 비밀

작성자
gfgc
작성일
2016-08-03 16:14
조회
1331
채색 옷의 비밀

창세기 37 : 1~4

2016.07.10. 강북꽃동산교회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올해 하절기부터 출근시 평일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직급제도를 개편하는데, 지금까지 사용하던 부장 과장이라는 직급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소통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애플사나 구글이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예도 들었습니다. 이제 삼성전자는 과장이나 부장에게 @@@씨라고 불러도 됩니다. 파격적인 제도개선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교회가 따라할 것입니다. 대부분 교회가 주일에 중직들은 정장을 하는데, 앞으로 중직들은 물론 교역자들도 정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더나가 반바지가 허락되는 시대가 올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수년전에 서울에 S교회에서는 이미 이런 제도를 시도했었습니다. 이 교회는 청년들이 2천명이상 출석했던 교회인데 담임목사가 주일에 까운도, 양복도 아닌 가벼운 티샤츠 차림으로 강단에 올라가 설교를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아래는 반바지 차림으로 강단에 서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상상이 가십니까? 종아리에 털이 복술 복술한 상태에서 성경책도 없이 노트북 하나 들고 강단에 오르는 담임목사님, 정말 파격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가능할 수 있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1월 1일 천보산 기도원에 갔을 때, 김@@ 선교사님 차림에서도 보아 왔습니다. 1월 1일 왠지 경건해야 하는 날에, 수 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정장 안하셨습니다. 그냥 티샤츠를 입은 상태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사실, 처음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 피조물들은 옷을 입을 예가 없었습니다. 사람도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사람이 옷을 입기 시작한 때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그때 처음 사람들은 자신들이 먼저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으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릴 수 없어서 나중에는 하나님이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려고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담 이후 성경의 역사는 어쩌면 옷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옷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옷과 관련해, 아담 이후 처음 등장하는 내용은 창세기 9장에서 노아가 옷을 안 입고 자다가 자식들에게 창피를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인간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으로 더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살에 이삭을 낳고 이삭이 젖을 뗄 즘에 동네 사람들을 불러놓고 찬지를 했는데, 그때 그에게 예쁜 옷을 입혀 주었을 것입니다. 색동저고리.

그 후 이삭이 결혼을 해 아들을 낳았는데, 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인 야곱이 형의 옷을 입고 장자의 행세를 하다가 집에서 쫓겨나 외삼촌댁에서 20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 때 야곱이 형의 옷을 입은 것은 어머니 리브가가 입으라고 해서 입었는데 그 댓가는 너무도 혹독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야곱은 정말 장자가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서 12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11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채색 옷은 어떤 옷입니까? 자기가 입었던 그런 의미의 옷입니다. 아버지가 그를 장자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가정에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채색 옷이 주는 의미를 알고 있는 그의 형제들은 요셉을 어떻게 대할까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채색 옷을 입은 날부터 요셉에 대해서 늘 못 마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요셉이 입고 있던 채색 옷을 벗기고 찢고 거기에 짐승의 피를 묻혔습니다. (창 37:23, 개정)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라고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가 사랑하고, 아버지가 선택하고, 아버지가 지명하여 세우고 아버지가 만들어 입힌 그 채색 옷을 형들이 벗기고 찟고 짐승의 피를 바른 것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래서 발가숭이가 되어서 구렁텅이로 던져진 요셉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요셉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요? 요셉이 잘못되면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아버지는 요셉이 형들에게 이렇게 미움을 받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것입니까?

사랑하는 아들의 옷이 찌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 왔을 때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론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의 바로에게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요셉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채색 옷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만들고 입혀준 채색 옷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자식 중에서 누구에게 채색 옷을 입었다면 아버지가 그를 장자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이 입고 있는 채색 옷은 요셉이 야곱가문에 장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요셉은 12명의 아들 중에 11번째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순서를 뛰어 넘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 일에 대해서 아주 간단히 말하고 있습니다. (창 37:3, 개정)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버지가 사랑하면 채색 옷을 입는 것이고, 장자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채색 옷을 입은 것은 스스로 입은 것도 아니고 원한 것도 아닙니다. 아니 그는 입을 자격도 없습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막내입니다, 나이도 어립니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리더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사랑하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형들의 미움입니다. 아버지가 입혀주시고, 지원해 주시면 할 수는 있지만, 이 미움은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채색 옷을 안 입겠다.” 그리고 오히려 채색 옷에 문제를 삼기도 하고 채색 옷을 입혀주신 분을 문제 삼기도 합니다. 왜 나를 사랑하셔서 미움을 받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용하시려고 지명하고 우리에게 영적 채색 옷을 입혀주시면, 사단 마귀들이 우리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어려움을 줄 수도 있을 턴데, 그때 우리는 우리를 지명하고 영적 채색 옷을 입혀주신 아버지를 원망하시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채색 옷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더 잘 알 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7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서 무리들에 넘겨졌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예수님은 로마 총독관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제일 먼저 이런 일을 했습니다. 마 27장 28절입니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라고 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고 제일먼저 옷을 벗겼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의해서 옷이 벗겨진 것처럼, 예수님도 무리들에 의해서 옷이 벗겨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홍포를 주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포가 무엇입니까? 왜 홍포일까요? 홍포는 오늘 요셉이 있었던 채색 옷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입는 옷입니다. 그러니까 무리들은 예수님께 왕의 옷을 입힌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라고 하시자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입힌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저 무리들을 통해 예수님이 원래 왕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조롱을 다한 후에 다시 주님이 입으셨던 옷을 입게 했습니다.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조롱을 다 한 후에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가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또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려면 계속 홍포를 입혀서 조롱하지 왜 다시 원래의 옷을 입혔느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채색 옷, 홍포를 입으셨던 왕의 왕 하나님 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시면서 그 홍포를 스스로 벗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 옷은 어떤 옷일까요? 그 옷은 이런 옷입니다. 33년 동안 기도할 때 입으셨고, 어린이와 제자들을 안으셨던 옷, 죄인을 안으시고, 병자와 문둥이를 안았던 그 옷입니다. 18년 된 병자가 몰래 뒤로 와서 만졌다가 고침 받았던 옷입니다. 고통 받는 자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딱아 주셨던 옷,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십자가를 지시고 때, 땀으로 범벅된 채 이러 넘어지고 저리 넘어서 먼지와 흙투성이가 되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 옷, 은 어떤 옷일까요? 무리들에게 채찍으로 맡아 피와 살로 엉킨 그 옷은 어떤 옷일까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로마 군병들에 의해 다시 벗겨지고, 군병들이 서로 갖겠다며 제비를 뽑은 그 옷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놀랍게도 그 옷의 정체는 마태복은 2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의 옷이었습니다. 죄인의 옷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장자로서 채색 옷을 벗으시고 스스로 입으신 옷은 섬김의 옷 이었습니다. 죄인의 옷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옷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입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 없는 대속 인을 필요로 할 때 주님은 순종하셨습니다.

여러분! 채색 옷은 좋은 것입니다. 영광스럽고 명예로는 옷입니다. 홍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섬기기시 위해서 그 영광의 홍포를 벗으시고 섬김의 옷, 죄인의 옷을 입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섬김의 옷보다 채색 옷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마땅히 입어야 할 옷은 섬김의 옷인 줄 믿습니다. 문론 섬기의 옷이나 죄의 옷을 입으면 무시와 조롱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신분적으로 채색 옷을 입은 주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의의 옷, 성도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럼으로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외형적인 채색 옷에 너무 관심갖지 마시고 섬김의 옷을 매일 깨끗하게 빨아 입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주님께서 또 다른 옷을 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발가벗겨진 요셉은 앞으로 어떤 옷을 입게 되는 건가요? 옷은 신분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요셉이 입는 옷에 따라 요셉의 신분도 달라질 것입니다. 만일 그에게 다시 채색 옷이 입혀진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구렁텅이에 던져졌던 형들에 의해 다시 그 구렁텅이에서 끌어 오려졌습니다. 요셉의 인생의 시비가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안탑갑게도 그의 형들은 어떤 사람에게 은 20개을 받고 팔았습니다. 순간 요셉에 몸에 새로운 옷이 입혀졌습니다. 무슨 옷입니까? 노예의 옷이었습니다.

요셉은 순간에 장자의 신분에서 노예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성공과 실패가 종이 한 장에 있다고 했나요? 사람의 신분도 옷 한 장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요셉은 자유를 잃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운명은 오로지 그를 부리는 주인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채색 옷을 입은 마음에서 한결 같았습니다. 요셉은 노예로서 한 집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노예 옷을 입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성실한 노예 옷마저 벗기려는 자가 있습니다. 주인의 아내 였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그의 옷을 잡고 벗기려 했습니다. 요셉은 주인의 처에게 노예의 옷만 주고 깨끗한 몸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노예의 옷을 벗은 요셉은 어떻게 되었을 까요? 주인의 처에게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창39:20) 요셉은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었고 죄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졸지에 요셉은 장자의 신분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노예의 신분으로 죄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옷을 벗기고 찢고, 피 뭇치고, 빼앗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요셉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해 무슨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요? 예수를 믿고 성공하려면 모두가 이런 과정을 겪어야 된다면 누가 예수를 믿겠습니까? 아니면 훗날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는 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그 상급을 받기위해 고난을 감수하고 믿을 까요? 물론 지금까지의 과정만을 통해서 위로를 이야기 한다면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알고 계시며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이 가는 곳마다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형통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요셉을 지명하여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고 그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증명해 보이시기를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옷이 벗겨지고 입혀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이고 그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신 것이 없고 일하시는 것이 없다면 그의 옷을 입히는 것도 없고 벗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옷이 벗겨지고 종 같은 느낌이 들고 죄인 같은 느낌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고 일하시는 중이십니다.

비로써 요셉에게 희망의 옷이 입혀지는 날이 왔습니다. 죄수의 옷을 입고 묵묵히 죄수들을 섬기는 어느 날, 간수장이 그를 부르더니 수염을 깍고 새로운 옷을 주더니 갈아입으라고 했습니다. (창 41:14, 개정)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라고 했습니다. 그날 요셉이 죄수의 복을 벗고 갈아입은 옷은 알현(謁見) 이라는 옷이었습니다. 이 옷은 지위가 높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 외올 때 입는 옷입니다. 요셉은 그날 바로 왕이 부름을 받고 왕앞에 나가기 위해 그 옷을 입었습니다. 어쩌면 이 옷은 성도가 성전에 나올 때 입는 옷 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베옷은 회개를 상징합니다. 구약에 하나님을 믿는 왕들은 진실로 회개를 할 때 꿇은 베옷을 입고 선정에 올라와 기도했습니다.

배알의 옷을 입고 왕에게 나간 요셉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왕의 총애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왕이 주는 세마포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일생에서 요셉이 입은 최종의 옷은 세마포 옷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입으신 옷 역시 세마포 였습니다. (막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세마포 옷은 어떤 옷입니까? 세마포 옷은 애굽에서의 영화(창45:13)를 나타내는 옷이었습니다. 또한 세마포 옷은 하늘에 있는 군대들과 천사들이 입는 옷입니다.(계19:14, 15:6) 그리고 세마포는 예수님의 신부(新婦)로 어린양의 혼인날에 성도들이 입을 옷입니다.(계19:7-9) 또한 세마포는 옳은 행실을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합니다.(계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요셉은 채색 옷에서 시작하여 노예의 옷, 죄수의 옷, 왕을 알현(謁見 =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 뵘)하는 자의 옷, 그리고 세마포 옷까지 여러 번 복장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요셉은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일관되고 좌로 우로 조금도 치우치거나 갈등조차도 발견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옷을 입히든 벗기든 찟든 피를 묻히든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신앙을 갖을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믿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믿음은 요셉이 민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어떤 옷을 입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가 휠씬 더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느냐보다 하나님이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을 다 아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정성을 다해 예배하고 헌신하는 분들에게 큰 믿음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우이들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ㄷ에게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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